전시서문 - 가을낙엽

2022 개인전 (카이스트)
정지연

허승희 작가의 작업은 얼핏 어둡고 쓸쓸하다.
나뭇잎의 색이 변하고 찬바람이 부는 이 계절에 잘 어울린다.
한편, 작가의 작업은 부단히 조용한 공감을 추구하고,
그 노력은 작품에 흐르는 정서를 다정하고 따뜻하게 이끈다.
그래서 더욱 가을과 겨울에 잘 어울린다.
작가는 차분함 속에 한 인물을 배치하고
그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 보곤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관람객이기도 하다.작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정에 관심이 많다.

작가가 작업을 처음 시작한 2010년 즈음에는 누군가 혼자 앉아 있는 모습,
특히 힘 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여자의 뒷모습을 주로 그렸다.
쓸쓸함과 절망,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는 담담한 뒷모습은
무엇보다 작가 자신의 모습에 가까웠다.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생활 속에 깃든 무수한 고민과 외로움은
작업에 대한 동경과 갈증으로 이어졌고,
그리는 행위를 통해 작품 속 인물과 대화하고 위로 받으며 용기를 내게 되었다.

작가 특유의 시각적 기억력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의 시선은 인물의 뒷모습에서 옆모습, 앞 모습으로 향했다.
가만히 혼자 있던 인물들은 걷거나 둘 또는 무리가 되기도 했다.
성인 여성이 아닌 남성,소년 소녀 등으로 관심이 확장 되었다.
때로는 화면 밖 인물의 시선을 따라 자연 풍경을 그리기도 하고,
키우는 고양이를 통해 같이 있는 것 만으로 위로가 되는 정서적 경험을 하면서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로서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교감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양한 소재는 작가의 작업 속에서 한계를 지우고 더 많은 자유를 제공한다.

소재가 다양해졌음에도 작업의 주제와 표현 방식에는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다.
작가는 내면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을 알아채고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과 색을 단순화 하는 등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관람객이 공감할 여지를 준다.
작가의 작품에서 여백은 특히 중요하다.

배경을 칠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고민을 한다.
물감을 올리고 긁어내거나 씻어낸 후
다시 덧칠 하는 반복을 통해 여백 위에 공간감과 깊이를 만들어낸다.
그러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파손하거나,
한동안 두었다가 다시 칠하고야 마는 완벽주의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최근에 그린 대형 작업들을 여러 점 소개한다.
풍경 작업도 있고,인물 작업도 있다.
작가는 쉽게 알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고,
그리하여 결국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둡지만 깊고 넒은 작품의 여백 안에 그 가능성이 새겨져 있다
슬픈 영화를 보고 울 때 처럼 , 옷 깃을 여미고
가을 낙엽을 밟으며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처럼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차분한 위로와 응원이 전달 되기를 바란다.

큐레이터 정지연